소멸시효가 무엇인가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는데도 일정 기간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없애는 제도입니다.
법원은 그 취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래 이어진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간이 지나 증거를 대기 어려워진 사람을 구제하며, 자기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법의 보호에서 빼기 위한 것입니다(대법원 1976. 11. 6. 선고 76다148 전원합의체 판결).
기간이 다 차면 채권은 당연히 소멸합니다(대법원 1966. 1. 13. 선고 65다2445 판결). 원금이 시효로 사라지면 이자도 함께 사라집니다(「민법」 제183조).
기간은 빚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같은 빚이라도 어떤 성격인지에 따라 기간이 달라집니다.
개인끼리 빌려준 돈 같은 민사채권은 10년입니다. 상행위로 생긴 채권은 5년입니다(「상법」 제64조). 다른 법에 더 짧은 규정이 있으면 그쪽을 따릅니다.
1년 이내의 정기로 지급하기로 한 이자채권은 3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매달 이자를 주기로 한 것처럼 정기로 지급되는 채권이지, 갚을 날이 1년 이내인 채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대법원 1996. 9. 20. 선고 96다25302 판결).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원래 기간이 짧았더라도 10년이 됩니다. 파산절차나 재판상 화해, 조정으로 확정된 것도 같습니다. 다만 판결이 확정될 당시 아직 갚을 날이 오지 않은 채권은 10년으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내 빚이 어느 쪽인지는 계약서와 채권자를 봐야 압니다. 짐작하지 마시고 132에 물어보세요.
언제부터 세는지가 먼저입니다
"5년이 지났다"고 하려면 어디서부터 세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원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입니다. 갚을 날이 정해져 있으면 그 날, 갚을 날을 정하지 않았으면 그 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때, 조건이 붙어 있으면 그 조건이 이루어진 때입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빚을 진 날이 아니라 갚기로 한 날부터 셉니다.
조금 갚으면 시효가 처음부터 다시 흐릅니다
이 글에서 하나만 기억하셔야 한다면 이 대목입니다.
채무자가 빚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시효가 중단됩니다. 이것을 채무승인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승인의 범위가 넓다는 점입니다. 말이나 서면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자를 내거나, 일부만 갚거나, 담보를 제공하는 것도 승인이 됩니다.
시효가 중단되면 그때까지 지나간 기간은 없던 것이 됩니다. 중단 사유가 끝난 때부터 처음부터 다시 셉니다(「민법」 제178조 제1항).
"5만원만 넣으시면 정리해 드리겠다"는 권유를 받으셨다면, 그 5만원이 무엇을 되돌리는지부터 확인하세요. 9년 11개월이 지난 빚이라도 그 순간 다시 0년이 됩니다.
채권자가 시효를 멈추는 방법
채무승인 말고도 채권자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것을 당했는지 알아야 날짜를 셀 수 있습니다.
재판상 청구, 지급명령 신청, 압류·가압류·가처분, 파산절차 참가가 있습니다. 소송이 각하되거나 기각되거나 취하되면 중단 효력이 없지만, 6개월 안에 다시 청구하면 처음 청구한 때에 중단된 것으로 봅니다.
그냥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중단 사유가 됩니다. 이것을 최고라고 하는데, 형식은 따로 없지만 6개월 안에 소송이나 압류 같은 조치를 하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재판상 청구로 중단된 시효는 재판이 확정된 때부터 새로 흐릅니다.
지급명령을 받으면 2주입니다
법원 봉투를 받고 겁이 나서 열어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기간이 지나갑니다.
지급명령은 채무자를 부르지 않고 서류만 보고 내립니다. 그래서 내 사정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면 그 범위에서 효력을 잃고, 사건은 민사소송으로 넘어갑니다. 거기서 사정을 말할 수 있습니다.
2주를 그냥 넘기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고, 강제집행으로 이어집니다.
이 2주는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기간입니다. 다만 본인 책임이 아닌 사유로 넘겼다면,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2주 안에 추후보완이 허용됩니다.
이미 갚아 버렸다면
시효가 지난 줄 모르고 갚은 경우가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돈은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법은 이런 경우를 도의관념에 적합한 비채변제로 봅니다(「민법」 제744조). 채권자가 부당하게 이득을 본 것이 아니라고 보아서, 반환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갚기 전에 확인하고, 확인한 뒤에 결정하세요. 추심 전화를 받은 그 자리에서 계좌번호를 받아 적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경우를 따져 보는 순서
날짜를 세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순서대로 짚어 보시면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갚거나 이자를 낸 날, 소송이나 지급명령을 받은 날, 압류를 당한 날을 한 장에 적어 보세요. 그 종이를 들고 132에 전화하시면 됩니다.
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빚을 떼어먹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 정해 둔 기간이 지났는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직 지나지 않았다면, 채무조정 쪽이 더 나은 길일 수 있습니다.
